2026년 9월 1일 화요일

[도서]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인 면도 있고 부패하기도 하지만 시민들은 그 제도의 혜택을 얻기 위해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중 선동가들은 국정 운영이라는 면에서 영리한 젊은이들보다 훨씬 덜 유능하지만, 민주주의르 강화하고 그 혜택을 증가시키므로 그만큼 더 시민들을 즐겁게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커다란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소한 변화들을 기대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모든 사소한 것들은 민주주의 필요악이고, 그 약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중략)

-행정부 쿠데타(executive coups)란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드이 민주주의를 유예하는 경우다.

-부정투표(election-day vote fraud)란 특정 결과를 만들어 낼 목적으로 선거 과정을 조작하는 경우다

-공약성 쿠데타(promissory coups)란 선거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장악하는 경우다.

-행정권 과용(executive aggrandisement)이란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번에 민주주의를 전복하지 않고 체제를 조금씩 약화시키는 경우다.

-전략적 선거 조작(strategic election manipulation)이란 선거 과정을 은미랗게 조작해서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경우다.

(중략)

일단 음모론이 지배적인 철악이 되면 음모론은 그 자체로 더욱 견고해진다. 유권자들은 체제가 조작되었다는 의심을 표현할 때 더 이상 순서를 지켜가며 교대로 하지 않는다. 승자든 패자든 모든 집단이 민주주의가 자신들을 노린 음모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란 대단히 어렵다. 진짜 음모를 대준에 공개해서 결국 누가 옳았는지 증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가지 보아 왔듯이 이제 쿠데타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엇다. 어쩌면 다른 방법으로는 음모론이 가짜임을 밝혀서 결국 누가 틀렸는지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터키에서 실패한 쿠데타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저 모두가 믿고 싶었던 바를 확인해 주는 데 그쳤다.

(중략)

포퓰리즘 시대를 걱정하는 일부 민주주의자들은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범함이라는 악을 비난하느라 바쁘다. 포퓰리스트들이 보기에, 생각 없는 관료들은 스스로 악에 저항할 힘이 없다는 대단히 끔찍한 생각에 빠질 위험이 없다.  그 대신에 생각 엇는 관료주의 '자체가'정말로 끔찍한 생각이며, 그런 관료주의에 저항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적 대응이다. 포퓰리즘 정치에서는 포퓰리스트와 반포퓰리스트 모두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선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믿느다. 오늘날 대립하는 두 주체는 문주주의자와 음모론자가 아니다. 음모론과 민주주의 탈을 쓴 음모론이 대결한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이는 1930년대 반복이 아니다.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던 1890년대와 더 가깝다.

(중략)

 현대 민주주의는 아실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 상실의 일부는 진정한 자기표현 능력이다. 우리는 줄타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 줄타기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간절한 바람을 지닌 공무원들이 우리를 위해 대신한다. 관중의 소음이 공연의 필수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자세를 세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만나는 또 다른 위험 요소다. 장난삼아 반대 편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연의 목적은 그저 공중에 있고 싶어서다.

 민주정치에는 여전히 무모한 면이 있다. 판을 바꾸겠다고 약속한 정치인들을 뽑는 이유는 그런 쇼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선거는 무미건조하고 인위적인 공연으로 변질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쁨을 주는 줄타기 곡예사가 아니다. 그는 남들이 떨어져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몽유병자이고 도박꾼이다. 그를 줄 위에 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다음의 둘 중 하나를 믿는 것이다. 사회에 안전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혹은 전체 공연이 사기라고 생각하거나.

(중랴)

왜 민주주의에 기계를 이용해서는 안 되는가

정치판에서도 기계에 의존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 부당하게 착귀당할 여지가 생긴다. 살인 로봇이 우리를 노예로 만든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입맛에 맞게 기계를 사용할 줄 아는 무자비한 인간이 그렇게 한다. 기술에 의존하는 세상에서는 기 기술에 대해 정통한 정치군이 곧 왕이다. 이는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를 괴롭히는 무서운 이야기인데,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해겠다. 기술이 부당하게 이용되는 확실한 증거로, 개인의 편경을 조장하고자 특정 성향의 유권자를 겨냥해서 기계가 메세지를 보내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반응을 유도해 내는 능력이 오용되면 민주주의 가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중략)

 힘은 강력하지만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느 기계는 주인인 인간으로부터 고통을 받지 않으므로 사실상 인간의 노예가 아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사물처럼 이용하면 타락하지만 기계 이용은 그렇지 않다. 기계는 그저 사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계들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중략)

 순수 민주주의란 무서운 것이다. 이는 군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사람을 쉽게 공격하게 해준다.  고대 아테네에서 인기가 떨어진 유명 인사는 시민들에 의해 추방되거나 암살 당했다. 1835녀에 미국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쓴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인들이 린치를 선호하는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 민주주의의 기원까지 추착했다. 토크빌은 이를 "다수의 횡포"라고 불렀다. 기회가 주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을 약자에게 쏟아 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오랜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 그런 거친 충동을 길들이는 데 체로 성공했다. 이제 사람들은 린치를 가하지 않는다. 벌을 주려고 다른 사람의 몸에 타르를 바르고 깃털을 붙이지 않는다. 다름 사람을 추방하지도 않는다. 단, 트위터에서는 예외다.

(중략)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견해에 더 많은 비중을 두지 않는 이이뉴느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에피스토크라시와 자주 혼동되는 테 크노크라시(technocracy)를 구분해야 한다. 둘은 다르다. 에피스토크라시는 최선책을 아는 사람들이 통치하는 체계이고, 테크노카라시는 기술 전문가들이 통치하는 체제다. 여기에서 기술 전문가란 기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중략)

대의민주주의와 중국식 실용주의적 독재 모두 테크노크라시가 출현할 여지가 충분하다. 두 체제 모두 특히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 특수 훈련을 받은 전무가에게 점점 더 많이 결정을 맡기고 있다. 전 세계 다양한 정치체제에서 중앙은행이 상당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러므로 테크노크라시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대안이 됮 못한다. 포퓰리즘과 마찬가지로, 이는 부수적인 지배 방식에 가깝다. 에피스토크라시가 테크노크라시와 다른 점은 기술적으로 정확한 결정보다는 '올바른' 결정에 우선 순위를 둔다는 것이다.

(중략)

비트겐슈탕니, 엘리자베스 테일러, 버트런드 러셀, 토머스 머튼(중략)콜럼부스, (중략),피터 크로풋킨, 당신과 당신의 부모님.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어울리는 삶이 있을까? 

 노직이 생각하기에, 유토피아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상적인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도 그러하리라 가정하는 실수를 범한다.

(중략)

1980년대 말, 서구의 여러 비판가들은 일본이 곧 강대국이 된다고 생각했다. 21세기는 일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유럽연합과 함께) '역사의 종말'에서 가장 기대할 만한 미래의 모범 사례로 일본을 들었다. 민주주의가 승리하면 세상은 안정적으로 번영하고, 효율적이되 다소 지루해질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거품은 (주식 시장의 붕괴와 함께) 꺼졌고, 미래는 다른 나라의 것이 되었다. 그 대신에 일본은 자만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 주는 우화가 되었다.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글담출판사)

서평 :

1. 새로운 시대에 발생 가능한 형태의 쿠데타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 지나치지 않고(제목과는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대해 언급한 책임.

2.  특히, 왜 자기 스스로 정의를 외치면서 상대방의 정의에 공감 못하는가. 심지어 그 중에서는 아예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들까지 있는데도 그런자 조차 스스로는 정의라 생각하는 심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음

3. 그 외에도, 정치를 기계에 맞기면 안되는 이유, 직접 민주주의 등등 근대 민주주의와 관련해 고민해 봐야하는 새로운 주제에 대해 상당히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음.

 

부정 선거론자들이 판을 치는 지금 상황에서 한번 쯤은 읽어 봄직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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