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요일

[도서] 잘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적어도 한국에서 고래의 상징은 '귀신고래'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작살에 스러진 비운의 고래.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고래. 귀신고래에는 매력적인 식민지 비운의 서사가 아우라를 더해주었다. 일본은 한 때 '고래의 바다'였다는 동해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고래를 잡았다. 1933년 이후 절멸한 듯 귀신고래는 잡히지 않았고 1958년 일곱 마리가 잡혀 돌아온 듯했다가 1964년 다섯 마리가 포획되고 1977년 두마리가 목격된 것을 끝으로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포경시대에 대한 향수에서든, 고래 보호에 대한 신념에서든, 귀신고래 포경 재개 찬반을 가리지 않고 한국 고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중략)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 중 하나가 바로 돌고래쇼죠. 그런데 쇼에 나오는 돌고래 중 상당수가 불법포획돼 동물원에 팔려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중략) 해경 조사 결과 이 중상당수가 제주 앞바다에서 어민들에게 불법포획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중략)

 우리나라는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상업포경 모라토리엄'이 시행된 이후 대형 고래는 물론 소형 돌고래의 포획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물에 우연히 걸려든 것이라도 법에 따라 즉시 방류하거나 해양경찰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업체는 어민들에게 그물에 돌고래가 걸리면 연락을 달라고 했고, 현장에 달려가 한 마리당 700~1000만원을 주고 사 왔다. 업체에 들어온 돌고래는 그때부터 공연용 돌고래로 조련받기 시작했다. 하루에 네댓 차례 있는 돌고래쇼에 나가거나 일부는 서울대공원으로 넘겨졌다. (중략)

경찰이 수사보곳에 최종적으로 기록한 불법취득 돌고래는 모두 스물여섯 마리였다. 모두 우연히 그물에 걸린 돌고래를 의도적으로 '포획' 한 것이었다. 퍼시픽랜드는 이 가운데 여섯 마리를 서울대고원에 넘겼다. (중략)

 서울대공원 개원을 알리는 테이프를 절단하고 전두환 대통령과 각급  장관들은 시찰에 들어갔다.(중략)  대통령 일행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돌고래쇼장이었다. 그때까지 한국 동물원에는 돌고래가 없다. 돌고래쇼도 없었다.(중략) 돌고래들은 연달아 실수했고, 그럴 때마다 대통령 옆에 앉은 오창연은 마음을 졸였다. (중략)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듣고 오창영은 안도한다.

 "대양이 좁다고 누비던 돌고래들이 이 산골에서 저만한 재주를 부릴 수 있다니..."

 대통령은 흡족했던 것이다. (중략)

 전도수와 김외운은 일본인 조련사에게 돌고래 조련을 배웠다.(중략)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서울대공원과 그 대표상품인 돌고래쇼를 가로지르는 식민주의에 관한 역사성이다. 서울대공원은 일본에서 벗어나 탈아 하고자 했지만, 돌고래쇼에 이르러 '회일' 했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중 (남종영 지음)


 가끔 상상하는 사항이기는 한데, 어쩌면 인류 역사 초기에 (특히 농경이라는 것이 시작되는 시기) 인간이 같은 인간을 가축화 하는 시도가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호러 영화 같은 내용의 가상의 역사를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근거는 없기 때문에

2023년 10월 2일 월요일

[리눅스] 스팀 'VM머신에서 작동할 수 없습니다' 문제 해결 방법(가장 쉬운)

 스팀을 리모트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 PROXMOX머신에 위도우를 설치해서 스팀을 설치 모든 세팅(pci passthrough 등등)을 맞추고 마침내 게임을 설치...

 그런데 난데없이 '가상머신에서 작동할수 없습니다'라는 소비자 권리 침해하는 이야기가 나오며 작동을 멈춘다. 한참을 이걸 해결하길 위환 방법을 찾았으나 결국은 포기... 했었으나 방법을 찾아 내었다.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한데, VM에 리눅스 배포판(민트든 우분투든)을 설치하고 정상적으로 그래픽카드 드라이버를 설치하고 스팀을 설치한 뒤에 여기에서 게임을 실행하면 VM에서도 정상적으로 게임이 실행 될 뿐만 아니라 스팀덱에서 정상적으로 리모트 플레이가 가능하다.

2022년 9월 6일 화요일

[시사] 인공 지능 시대의 예술에 대한 가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래 링크의 기사 내지는 최소한도 그림에 대한 내용을 보았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1위‥"이것도 예술인가?"

 출처 : https://imnews.imbc.com/news/2022/world/article/6404569_35680.html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인간의 고유 영역인 예술까지 기계가 침범했고 인간의 시대는 끝인가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의견을 내었는데(그들 대다수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부정적인) 컴퓨터 기술 수준이 이정도까지 올라간 것은 굉장한 일이나 그러나 이 시점에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본다. 다음의 질문에 진지하고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자.


1. 우리는 말을 타면 70 km/h를 달릴 수 있다. 자전거를 타면 나 같이 발걸음이 느린 사람조차 순간적으로라도 30 km/h까지 속도를 높힐 수 있고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면 80 km/h는 우습게 올릴 수 있고 KTX를 타면 시속 200 km/h까지 속도를 내는게 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육상 올림픽을 올림픽의 꽃이라 여기며 세계 기록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록조차 이것을 시속으로 전환하면 44 km/h가 넘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이 속도는 10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지속 가능한 속도이고 1시간동안 이 속도를 유지 가능한 초인은 세상에 없다. 마라톤은 어떨까? 시속으로 전환하면 22 km/h정도가 세계 기록이다. 기계가 80 km/h 까지 우습게 도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인간의 이런 기록은 초라하기까지 하지만, 이걸 감히 초라하다고 할 얼간이는 없다.
 왜 우리는 우주적 객관성을 가지고 보면 초라할 이 기록에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아니 당초 기계가 모든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이 시대에 어째서 아직도 올림픽이라는걸 하는걸까?

2. 사진이란 것이 발명 되었을 때, 예술은 이제 끝났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세상 그 어떤 화가 보다도 더 사실직이고 빠르며 무었보다도 인간 화가 보다도 더 저렴하게 화상을 기록 가능한 발명품 앞에서 그 때 까지의 회화라는 기법은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모든 현대적 국가의 학교 수업에는 꼭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회화 실습과 수업이 들어 간다. 어째서 일까? 스마트폰 카메라로 버튼 한번 누르면 끝나는 일을 종이와 연필로 재현 하는 일을 수업에 넣어 두는 것이다.

3. 위의 2번 사항에서 시간이 지나 현대에 와서 사진전에는 꼭 사진의 RAW파일을 제출하게 한다. RAW파일은 카메라가 렌즈를 통해 받아들인 상을 센서를 통해 기록한 가장 원본에 가까운 기록 파일이다. 컴퓨터 합성이 일상화 된 이 시대에 현실을 가장 그대로 기록했다는 증거로써 심사 입증에 제출하게 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할까?

4. 우리 '인류'는 어째서 그림이라는 예술 활동을 선사 시대부터 해왔던 것일까? 이 행위 자체는 먹고 사는데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다. 아니, 먹이를 잡거나 채집할 인력과 시간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얼추 보기에는 그 먹고 사는 행위 자체를 방해 하는 행동에 가깝다. 그 뿐일까? 고고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벽화의 염료는 독을 가지고 있어서 벽화를 빨대로 그렸던 사람들은(염료를 빨대로 빨았다가 뿜는 일종의 스프레이로 사용했던 것이다) 필시 환각을 보면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5. 체스와 바둑 모두 슈퍼컴퓨터가 인간 기사를 이긴지 오래이기는 하나, 올해도 여전히 체스와 바둑 대회는 열렸다. 물론, 인공지능의 공격적 수에 영향을 받아 심히 달라진 전통적이지 않은 수가 많이 생겼다고 풍문에 들리고 있지만, 여전히 기사가 대국을 둘 때에는 아무런 도구 없이 오직 자신의 두뇌와 손만이 허용된다. 몇년 전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치팅 행위를 하다 발각되어 기사 자격 및 상이 몰수 되는 상황이 발생했던 일도 있었다. 우리는 컴퓨터가 바둑이나 체스를 더 잘두는 시대에도 어째서 사람의 생각하는 힘만으로 겨루는 대회를 고수하는 것일까?


위의 사항들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하는 스포츠, 예술 활동은 모두 생존에 필수 적인 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 이전부터 이러한 활동들을 해왔다. 어째서일까? 범 우주적, 절대적인 객관적인 시점이 있다면 이 행동들 모두 잉여 행위에 불과한 행동이란 뜻이지 필수적인 행동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행동을 경의롭다 생각하고 그때 그때 기술의 발전에 따라 경향이 바뀌는 일은 있어도 선사 시대 우리가 그림을 그리던 그날 부터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러한 예술과 스포츠는 그 것을 한다는 해위 자체가 바로 인간의 한계를 증명하는 행동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것의 도움도 없이 순수한 인간의 힘만으로 인간의 한계를 증명하는 이 행동이 바로 이 잉여 행위를 수만년의 시간을 넘어 유지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래서 컴퓨터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이 행동 자체가 맥이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발전과 변화가 없을 때만 이 행동의 종료가 올 것이다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기계에 의해서 종료된 직업과 행동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행동을 통해 얻는 것이 행위의 목표일 경우입니다. 소위 말하는 직업의 경우 그것을 행하는 행동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는 산출물이 목표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만약 기계가 그 행동을 대체할 경우 거의 즉각적으로 그 직업이 소멸되어 가는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행동 자체가 목표인 게임, 스포츠, 예술, 글쓰기의 경우 기술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 경향이 바뀌는 일은 있어도 그 일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 경향에서 볼 때, 오직 결과만이 모든 것이다라고 보는 성과 지상주의자야 말로 기계로 대체될 여지가 많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2022년 7월 29일 금요일

[도서] '중세의 죽음'을 읽고서

 헤라클레스, 삼손, 다윗, 아더왕의 공통점은 무었일까? 

사실 이 셋은 단순히 기운이 센 장사라는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모두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 신의 선택을 받은 전사 혹은 지도자라는 점과 '장사'라는 속성이 있다.

 헤라클레스는 탄생 자체가 반인 반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고, 삼손은 신의 선택을 받은 제사장, 다윗 역시 신에게 선택받아(=엘리야 선지자) 유대인의 왕이 되었으며 아더의 경우 탄생부터 멀린이라는 마법사로 부터 준비되어 엑스칼리버라는 신검을(처음에는 망치였다는 이야기가 있음) 바위로 부터 뽑아(처음에는 모루라는 이야기도 있음) 자신이 신으로 부터 선택 받은 전사임을 증명하는 식으로 신의 전사이며 자신의 무리의 우두머리(=지도자)라는 것을 증명한다. 

 헤라클레스는 지금도 장사의 대명사나 마찬가지고, 삼손도 유대인 중 가장 기운센 장사라는 아이콘이며 다윗은 블라셋의 거인 '골리앗'을 하필이면 돌을 머리에 박아서 쓰러트려 자신이 힘을 증명하고 아더왕의 경우 그 속성이 부하로 분리되기는 했으나 그의 부하인 가웨인은 힘이 장사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아더왕의 경우 남들이 들어 올리지 못하는 무거운 신검을 들어 오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힘을 증명한 것이다)


2) 4명다 신의 기준은 커녕 세속적 기준의 도덕정 결함을 가진 행동을 한다

 헤라클레스는 아주 수시로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는게 일상이고(그리스 영웅 전체가 그렇게 도덕적인 행동과는 거리가 있다) 삼손은 당시 유대인들 기준에서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외국인 여자와 혼인을 하기를 원했다. 다윗은 정권 초라면 모를까 자신이 왕에 올라가서는 비록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여자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여자와 아이를 가졌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람 상대의 남편을 자살 공격대 선봉으로 내세우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는 행동을 했다. 아더왕의 경우 그 탄생(앞서 이야기한 다윗 왕 다음의 왕 솔로몬의 경우처럼)부터 영 도덕적이지 못한 방법이었고(유럽 신화나 전설에서 신이 남편의 모습으로 변신한체 남녀 관계를 가진다는게 드문 내용이 아니지만) 그의 사생아인 모드레드의 반란(그리고 그 사생아는 자신의 누이와의 관계로 태어난 아이다) 다시 왕비인 귀네비아는 왕의 기사 중 하나인 란셀롯과 부도덕한 관계였다.


3) 4명다 이 부도덕한 행동이 본인과 왕국의 파멸을 가져옴

 헤라클레스의 경우 어느 국가에 소속되어 본적이 없으니 좀 다르겠지만 역시 사실상 길가에서 마주친 사람(라기 보다는 하급 신)을 죽이고 다시 자신의 아내 외의 사람들 탐하다 이들이 복합적으로 만든 함정에 빠져 죽게 되었다. 삼손의 경우도 외국 여자를 탐하다 자신의 약점인 '긴 머리카락'을 잘리고 노예로 고생고생하다 이들에게 보복을 하고 죽게 되고 다윗의 경우 몇 세대가 걸리기는 하지만, 그런 부도덕을 통해 만들어낸 왕국이 결국 철권 독재 정치를 거듭하다 왕국의 분열을 낳게 되고(사실 솔로몬 대에도 왕국의 분열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종국에는 거의 근래까지 왕국은 멸망하게 된다.(물론 둘 사이에 시간 차가 있어 이걸 연결하는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아더왕의 경우도 왕국내의 온갖 부도덕한 사항들이 만들어낸 갈등이 부디치며  종국에는 왕국이 분열 파멸의 길을 걷게 되며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의 목슴 조차 잃게 되는 결말에 이르르게 된다.


이상과 같이 이들은 모두 문화권이 가까운듯 하지만, 반대로 서로 상이한 문화권(그리스/유대/영국)의 영웅들이나 서로간에 상당히 재미있는 공통점들이 있는 영웅들이다. 뭐랄까,신의 선택을 받은 슈퍼히어로 조차 현실이라는 문제에 던져 두면 결국 한계에 부딪혀 언젠가는 꺽인다는 점을 표현하려 했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들 모두 시작할 때는 신의 선택을 받은 선의 화신들이 현실 문제에서 타락을 거듭해 죽음이라는 몰락을 겪는다는 점은 상당히 재미있는 문제이다. 동시에 이들 영웅담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들이 현실의 문제 앞에서 보통 사람과 똑같이 고민하고 갈등하다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점이 이 이야기들의 재미의 핵심이다. 초인이 남녀상열지사에 극도로 고민하는 평범한 고민을 가지고 그 고민 끝에 내놓은 행동이 평범한 인간만 못한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가 왕국의 몰락이라는 파멸적 결론이라는건 이 이야기를 아주 극적으로 만들어 주며 동시에 '태어날 때는 영웅, 죽을 때는 괴물'이라는 클레셰를 아주 잘 따른 상황이라 본다.


4) 이 이야기의 종료 후, 이 인물들은 대중 희망의 아이콘이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들의 가장 극적인 부분인데, 이 인물들은 사후 후대인들에게 이들의 부도덕한 행동과 파멸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대중 희망의 아이콘(상징)이 되어 준다는 점이다. 특히 어려운 시기가 와서 그 문화권이 어려워 질 수록 재미있게도 대중은 이 영웅들을 다시 희망으로 재 소환해서 그에 상응하는 인물이 다시 나타나길 기대한다. 어쩌면 이러한 신화나 전설은 그런식으로 나타난 인물이 자기 권력에 도취되어 파멸을 겪어 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일 지도 모른다.


만약 이 이야기들에서 힘(=폭력)이라는 요소를 빼고 도덕적 행동을 하는 캐릭터를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그게 바로 '예수'일 것이다. 항상 옳바른 선택만 하고 도덕적 타락을 겪지도 않는다. 당연히 그의 죽음의 원인은 자기 '제자'의 배신에 의한 사건이며 그 탓에 어떤 의미에선 '도덕적 갈등'으로 인한 파멸 또한 없는'영웅담'으로써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대신 '예수'의 경우 부활을 통해 위의 영웅들이 달성 못한 '죽음'의 극복이라는 속성을 가지게 되며 이야기의 진정한 종결과 재미는 이 부활 부분일 것이다.


 추가 : 조금 시점을 달리 해서 보자면,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장사치의 좌판을 뒤엎어 버린 부분은 '장사'라는 속성을 부여해 준 부분일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신화의 영웅들과는 달리 거대한 바위나 무거운 검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을 과감하게 들어 올려 깨 버렸다는 점이 어쩌면 그의 가장 큰 속성을 부여해 준 것일 것이다.

2022년 6월 25일 토요일

[도서] 모방자의 의미

 사교적인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 더 즐거울 뿐만 아니라 필경 그들 역시 더 똑똑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개념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재와 모방자의 두 종족이 살고 있는 행성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천재는 매우 뛰어나며 열 명 중 한명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진정으로 놀라운 것(예를 들면 낚시대)을 방명한다. 모방자들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낚시질을 배우는 사람은 천 명 중 한 명뿐이다. 이는 천재가 모방자보다 백배 더 똑똑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천재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하다. 평균적으로 낚시대를 발명한 천재는 주위에 낚시를 가르칠 수 있는 친구가 한 명밖에 없을 것이다. 모방자에게는 평균 열 명의 친구가 있어 열배 더 사교적이다.


'휴먼카인드' 에서

2022년 6월 12일 일요일

[LINUX/ZFS] zfs pool ID(혹은 UUID)로 생성하기

 참조 페이지 :

https://www.reddit.com/r/zfs/comments/o5qm6e/proper_way_to_create_a_zfs_pool_byid_format_type/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ddong1224&logNo=120182042931

https://jangpd007.tistory.com/218?utm_source=pocket_mylist


1.설치

    apt install zfs-fuse
 

2.풀(pool) 생성

여기서 부터가 중요하다. 보통 풀을 생성할 때에는 장치명(/dev/sda 혹은 sdb) 같은걸로 지정한다. 문제는 이렇게 했다 나중에 하드디스크를 추가할 경우 일시적으로 나마 마운트가 안되는 불상사가 발생 가능하다.
 그래서 하는게 

    1) ls -l /dev/disk/by-id
           혹은
        ls -l /dev/disk/by-uuid
 
로 원하는 디스크를 조회한다.
 
아직 디스크에 파티션을 생성 안했다면 뜨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2) sudo mkfs.xfs /dev/sdx 
 
명령어로 임시로 파티션을 생성하면 id가 조회가 될 것이다.
 
    3) sudo  zpool create -f (생성 pool 명) "/dev/disk/by-id/xxxxxxxxxxxxxxxx"
 
위와 같이 생성하면 원하는 디스크를 id로 생성하는게 가능하다. 

3. 마운트

3)번 명령어에 -m 으로 한번에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나 
 
sudo zfs set mountpoint=(마운트 포인트) (zfs pool 명)

으로 수동 지정해 주면 드디어 마운트가 된다.

이제 써 주기만 하면 끝.

2022년 2월 2일 수요일

[LINUX] fish shell로 전환 시 anaconda path 문제 해소

 참조 문서 : https://stackoverflow.com/questions/34280113/add-conda-to-path-in-fish


통상 리눅스를 맨 처음 설치하고서 쓰게 되는 것은 전통적인 bash shell인데 굉장히 안전적이면서도 강력한 기능의 shell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쓰다보면 편의성 부분에서 아쉬울 때가 많은게 사실이다.(그래도 자동 완성 기능만 해도 엄청난 진보지만) 그래서 잠시 만이라도 다른 종류의 shell로 전환을 하려면


chsh


이라고 한 줄 명령만 내려주면 (cat /etc/shells 라고 설치된 쉘 종류의 확인도 가능하다)금세 변경이 가능하나 파이썬 유저의 경우 생각치 못한 한가지 시련이 내려지는데 그건 바로...


anaconda명령어가 갑자기 안먹힌다.(정확하게는 conda path가 쉘이 바뀌며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는 간단하게 한줄 명령어만 내려주면 해결된다.


/(당신의 아나콘다 설치 경로 대게는 ~ 다)/bin/conda init fish


이 명령어 한 줄이면 fish에 필요한 설정을 자동으로 추가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