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한국에서 고래의 상징은 '귀신고래'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작살에 스러진 비운의 고래.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고래. 귀신고래에는 매력적인 식민지 비운의 서사가 아우라를 더해주었다. 일본은 한 때 '고래의 바다'였다는 동해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고래를 잡았다. 1933년 이후 절멸한 듯 귀신고래는 잡히지 않았고 1958년 일곱 마리가 잡혀 돌아온 듯했다가 1964년 다섯 마리가 포획되고 1977년 두마리가 목격된 것을 끝으로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포경시대에 대한 향수에서든, 고래 보호에 대한 신념에서든, 귀신고래 포경 재개 찬반을 가리지 않고 한국 고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중략)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 중 하나가 바로 돌고래쇼죠. 그런데 쇼에 나오는 돌고래 중 상당수가 불법포획돼 동물원에 팔려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중략) 해경 조사 결과 이 중상당수가 제주 앞바다에서 어민들에게 불법포획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중략)
우리나라는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상업포경 모라토리엄'이 시행된 이후 대형 고래는 물론 소형 돌고래의 포획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물에 우연히 걸려든 것이라도 법에 따라 즉시 방류하거나 해양경찰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업체는 어민들에게 그물에 돌고래가 걸리면 연락을 달라고 했고, 현장에 달려가 한 마리당 700~1000만원을 주고 사 왔다. 업체에 들어온 돌고래는 그때부터 공연용 돌고래로 조련받기 시작했다. 하루에 네댓 차례 있는 돌고래쇼에 나가거나 일부는 서울대공원으로 넘겨졌다. (중략)
경찰이 수사보곳에 최종적으로 기록한 불법취득 돌고래는 모두 스물여섯 마리였다. 모두 우연히 그물에 걸린 돌고래를 의도적으로 '포획' 한 것이었다. 퍼시픽랜드는 이 가운데 여섯 마리를 서울대고원에 넘겼다. (중략)
서울대공원 개원을 알리는 테이프를 절단하고 전두환 대통령과 각급 장관들은 시찰에 들어갔다.(중략) 대통령 일행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돌고래쇼장이었다. 그때까지 한국 동물원에는 돌고래가 없다. 돌고래쇼도 없었다.(중략) 돌고래들은 연달아 실수했고, 그럴 때마다 대통령 옆에 앉은 오창연은 마음을 졸였다. (중략)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듣고 오창영은 안도한다.
"대양이 좁다고 누비던 돌고래들이 이 산골에서 저만한 재주를 부릴 수 있다니..."
대통령은 흡족했던 것이다. (중략)
전도수와 김외운은 일본인 조련사에게 돌고래 조련을 배웠다.(중략)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서울대공원과 그 대표상품인 돌고래쇼를 가로지르는 식민주의에 관한 역사성이다. 서울대공원은 일본에서 벗어나 탈아 하고자 했지만, 돌고래쇼에 이르러 '회일' 했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중 (남종영 지음)
가끔 상상하는 사항이기는 한데, 어쩌면 인류 역사 초기에 (특히 농경이라는 것이 시작되는 시기) 인간이 같은 인간을 가축화 하는 시도가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호러 영화 같은 내용의 가상의 역사를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근거는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