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현대에도 '신'이라는 편한 답안에 집착한다는 것은

종교란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이치를 설명했던 가장 원초적이고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 스스로가 인간이고, 모든 것이 태어나, 자라나고, 마지막에 죽는다는 것을 깨닳은 순간 이 모든 것을 낳아준 초월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고 그 당시 수준에서(즉 자기들이 관측 가능한 수준에서) 그 정도 대답이면 가장 합리적인 대답이었을 터이니 모든게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근데 시대가 지나고 아는것이 많아지자 단순히 이 초월적 존제인 신 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결정적으로 그 당시의 관측서인 신화나 경전과 모순되는)을 발견하기 시작되지 이에대한 합리적 생각을 도출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고전 과학이었을 것이다.(갈릴레이를 시작으로 한)

결국 20세기에 와서 다시한번 고전과학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관측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다시한번 도약을 한 것이 오늘날의 현대 과학일 터이고 앞으로 이 도약은 또 다른 형태로 뛰어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성 이론이 좀더 정밀하게 맞아 떨어지고(물론 '광속에 접근하는'과 같이 극단적인 조건이라는 전재 조건이 붙지만) 뉴턴 역학의 정밀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뉴튼을 비웃는 멍청이는 세상에 없듯이(만약 있다면 때려줘도 상관 없을 듯 하다) '신'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대답을 했던 우리의 조상을 비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이미 요람이라는 아이 전용 침대에서 나온 다큰 성인이 단지 그때가 편했다는 기억 때문에(그런데 유아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 아기 옷을 뒤집어 쓰고 요람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 심각한 유아 퇴행적 행동을 보인다면 그것은 불쌍하거나 웃긴 사람일 것이고, 더 나아가 이를 이용해 돈벌이에 쓴다면 그것은 아예 '신'을 부정하는 행동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으며 결국 죽을 때는 누군가를 붙잡거나 혹은 '사후' 세계가 있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이 마음에도 없는 '선행'을 하는 것일 터이고 적어도 그런 인간의 악행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적어도 이 시스템의 장점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그러나 동시에 신이나 사후 세계가 없지만 나는 내 이웃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돕고 싶기 때문에 내 이웃을 돕는다는 보편적인 봉사 정신이 좀더 멋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적어도 마음에도 없는 봉사 활동을 거짓 미소를 지으며 하는 것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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