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4일 월요일

[도서] 전쟁충동


 

 안보학의 임무는 이런 현대의 충돌들을 여구하는 것이다. 논의가 분분한 영토권 같은 문제가 그중 하나다. 1945년 이후에 만들어지고 규정된 이 학문의 목적은 전쟁의 우너인과 전쟁을 방지할 방법을 연구한느 것이다. 초기 중국이나 로마 같은 역사적 사례들이 '안보딜레마'(충돌을 피하면서 안보를 확보하는 방법)라고 부루는 것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잠ㄴ, 이 학문은 냉전과 쟁전 이후 세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왜 전쟁이 발발하거나 발발하지 않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핵신적인 설명은 여전히 안보이다. 그것이 충분한지 도는 너무 부족한지에 관한 것이다.

 (중략)

 개별 국가의 행동이 아니라 국제 체제의 이해를 통해 전쟁 또는 잰쟁의 부재를 설명한느 것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 전략 이론가들 사이에서 '신현실주의'(개별 국가의 외교 정책을 다루는 '신고전 현실주의'와 혼동하면 안 된다)로 불리게 된다. 신현실주의를 창시한 문헌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교수 케네스 왈츠가 1979년 출간한 국제정치이론이라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1940년대의 양극 냉전을 지배했던 국가 안보 이론과 다르다고 하지만, 왈츠는 국제 체제를 국가의 집합체로 규정했다. 모두가 권력을 자국의 안보를 위해 사용하기를 원하는 나라들이다. 그의 결론은 불이나 힌슬리와 근보적으로 달라싿. 그는 충돌과 경쟁이 체제 자체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다. 왈츠는 이렇게 썻다. "무정부적 체제에서 국가는 스스로의 안보를 확립해야 하며, 안보에 위협이 되거나 위협이 된느것처럼 보이는 것은 많다."전쟁이 반복되는것은 국제 체제의 구조로 설명된다면서 "무정부적 세계에서 평화는 깨지기 쉽다"라고 왈츠는 주장했다.

 신현실주의는 두 개의 분명한 학파로 갈라져 이론적 설명이 더욱 복잡해졌다. '공격적 현실주의'와 '방어적 현실주의'다. 전자는 강경파 현실주이로, 국가는 타국과의 관계에서 절대로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고 언제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요할 경우 의도적으로 공격에 대응하는 군사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런 형태의 신현실주의 아래서 국가는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군력을 얻으려 노력해야 한다. 공화국 시기의 로마와 좀 비슷하다. 이런 의미에서의 권력 추구는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고 더욱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에서든 세력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냉전 시기 엄청난 무력을 갖춘 두 초강국 사이의 균형 같은 것이다. 반면에 방어적 현실주의는 영국 학파와 마찬가지로 안보는 방어에 더 적합한 구사적 형태를 갖춘 온건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더 잘 고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가는 협력, 동맹, 협정, 심지어 군비 축소를 통해서도 안보딜레마를 해결 할 수 있다. 더 타협적이고 협력적인 구조가 가하는 압박은 전쟁의 가능성을 줄일 것이고, 사실 그것이 현대 국제관계의 특징이다. 이는 '구조적 조정자'라고 불리며, 이것이 무정부상태를 오나화하고 죽제 체제가 어째든 돌아가게 한다.

(중략)

 전쟁은 앞으로 100년 동안 분명히 변할 테지만, 누가 누구와 전쟁을 벌이고 그 동기가 무엇일지는 예측할 수 없다. 금세기까지 일어난 전쟁은 인과관계를 분명히 보여 준다. 전쟁은 사라지기로 예정돼 있다는 생각은 2000년 이후의 많은 충돌이나 다가오는 수십 년 동안에 예견되느 생태 위기, 자원 스트레스 종교적 갈등과 양립할 수 없다.  그 요인들이 전쟁을 유발 할 수 있고, 이에 대해서는 오랜 역사적 사례가 있다. 현재 또는 미래의 국제질서에서 전쟁 없는 세계가 곧 출현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전쟁의 원인은 수천 년 동안 줄곧 있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주요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잠재적 충돌에 대비하고 있다. 지상의 중무장한 적들을 지켜보는 사람이나 서방이 벌이는 대리전 또는 잦은 핵무기 상승작용 위협을 고나찰하는 사람은 그 다양한 형태의 전부행위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것이지만, 미래에도 전쟁은 존재한다.

전쟁 충동 -과학으로 추적하는 폭력의 역사(리처드 오버리 지음/출판사 : 북이십일 아르테)

 

서평 :

1. 인간의 전쟁 충동에 대해 생물/심리/인류/생태/자원/신념/군력/안보 라는 굉장히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검토를 한 좋은 책

2. 그런데 생물학적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인간은 그닥 전투에 적합한 생물이 아님. 당장, 전쟁터에 나간다 해서 몇 주 동안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계속 전투가 가능한 인간이 있을까?(반면에 인간이 잠수를 하면 놀랍게도 생리 구조가 해양 포유류와 유사하게 변한다) 돌고래만 해도 몇 주간 뇌를 좌우로 쉬어 가며 계속 해엄치는게 가능하지만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런게 불가능하다. 최초의 전쟁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시점으로 부터 생리적 영향을 끼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전쟁이 인간이라는 종에 생물학적으로 끼친 영향은 의외로 미비하다.

3.  그 외에도 자원이라는 부분도 좀 생각해 봐야 할게, 전쟁에 투입하고 그 이후 그 땅을 관리하는데 투입해야 한느 비용을 상회하는 사례는 굉장히 드물다. 심지어 유일하게 성공한 식민지 사업인 영국의 식민지 사업 조차, 결코 전면전 양상으로 간 적은 없다.(그곳이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이 우글거리는 장소라는 문제도 있지만)

4. 당장 전쟁, 적어도 현/근대적인 형태의 전쟁은 여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수단이다. 돈은 고사하고 식량조차 없다면 적어도 전쟁은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5. 그런데 책 내용 중, 적어도 하나는 전적으로 동의가 가는 내용이 있는데. 권력욕 때문에 전쟁을 한다는 내용. 이 욕구가 얼마나 사람을 멍청이로 만드는가를 우리는 바로 몇년 전에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전쟁이 발생하면, 권력이고 뭐고 모든게 다 부숴지고 자기 자신들이 그 상황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그 수단을 자꾸만 만지작 거린다.

6. 더불어 하나 빠진게, 전쟁에 대한 아주 긍적적인 낙관론. 이해가 안되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자들은 언제나 '나는 예외'라고 생각한다. 마치 도박장에 가서 나만은 그 많은 파산했던 도박가들과 다른 예외적인 행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그거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듯 행동한다.

 

이런 점들이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좋은 책이라는데는 이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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