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수요일

[도서] 현명한 퀀트 주식투자 (이종진,이우근, 문호준 외 2인 지음)

 

1. 당신이 알고 있는 상식은 정확합니까?

2. 명확한 투자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까?

3.단신의 투자 전략은 검증되었습니까?

 

서평:

1. 일단 특정 시스템에 지나치게 집중해서 설명한 것은 그렇게 좋은 것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제대로 퀀트를 공부한다면 통계학, 통계확률수학, 컴퓨터 언어 등등 못해도 3개 과목은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다 보니 그걸 다 지나치고 대신 구현이 가능한 시스템을 보여준다는 건 좋았음

2.특히 가정 -> 이론화 -> 검증 이라는 절차를 걸쳐야 하고, 시스템에 의존하지만 그걸 가장 손쉽게 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

3. 거기에 그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함.

 

 금융 이론에 대한 원리가 아직 확정이 안되서 그런지, 퀀트에 대한 책들은 내용이 중구 난방인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이 책은 그런 절차에 대해 보기 좋게 정리 했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좋은 책이라 보임.(내용의 정확도와는 별도로) 

2026년 9월 1일 화요일

[도서]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인 면도 있고 부패하기도 하지만 시민들은 그 제도의 혜택을 얻기 위해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중 선동가들은 국정 운영이라는 면에서 영리한 젊은이들보다 훨씬 덜 유능하지만, 민주주의르 강화하고 그 혜택을 증가시키므로 그만큼 더 시민들을 즐겁게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커다란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소한 변화들을 기대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모든 사소한 것들은 민주주의 필요악이고, 그 약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중략)

-행정부 쿠데타(executive coups)란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드이 민주주의를 유예하는 경우다.

-부정투표(election-day vote fraud)란 특정 결과를 만들어 낼 목적으로 선거 과정을 조작하는 경우다

-공약성 쿠데타(promissory coups)란 선거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장악하는 경우다.

-행정권 과용(executive aggrandisement)이란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번에 민주주의를 전복하지 않고 체제를 조금씩 약화시키는 경우다.

-전략적 선거 조작(strategic election manipulation)이란 선거 과정을 은미랗게 조작해서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경우다.

(중략)

일단 음모론이 지배적인 철악이 되면 음모론은 그 자체로 더욱 견고해진다. 유권자들은 체제가 조작되었다는 의심을 표현할 때 더 이상 순서를 지켜가며 교대로 하지 않는다. 승자든 패자든 모든 집단이 민주주의가 자신들을 노린 음모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란 대단히 어렵다. 진짜 음모를 대준에 공개해서 결국 누가 옳았는지 증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가지 보아 왔듯이 이제 쿠데타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엇다. 어쩌면 다른 방법으로는 음모론이 가짜임을 밝혀서 결국 누가 틀렸는지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터키에서 실패한 쿠데타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저 모두가 믿고 싶었던 바를 확인해 주는 데 그쳤다.

(중략)

포퓰리즘 시대를 걱정하는 일부 민주주의자들은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범함이라는 악을 비난하느라 바쁘다. 포퓰리스트들이 보기에, 생각 없는 관료들은 스스로 악에 저항할 힘이 없다는 대단히 끔찍한 생각에 빠질 위험이 없다.  그 대신에 생각 엇는 관료주의 '자체가'정말로 끔찍한 생각이며, 그런 관료주의에 저항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적 대응이다. 포퓰리즘 정치에서는 포퓰리스트와 반포퓰리스트 모두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선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믿느다. 오늘날 대립하는 두 주체는 문주주의자와 음모론자가 아니다. 음모론과 민주주의 탈을 쓴 음모론이 대결한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이는 1930년대 반복이 아니다.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던 1890년대와 더 가깝다.

(중략)

 현대 민주주의는 아실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 상실의 일부는 진정한 자기표현 능력이다. 우리는 줄타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 줄타기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간절한 바람을 지닌 공무원들이 우리를 위해 대신한다. 관중의 소음이 공연의 필수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자세를 세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만나는 또 다른 위험 요소다. 장난삼아 반대 편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연의 목적은 그저 공중에 있고 싶어서다.

 민주정치에는 여전히 무모한 면이 있다. 판을 바꾸겠다고 약속한 정치인들을 뽑는 이유는 그런 쇼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선거는 무미건조하고 인위적인 공연으로 변질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쁨을 주는 줄타기 곡예사가 아니다. 그는 남들이 떨어져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몽유병자이고 도박꾼이다. 그를 줄 위에 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다음의 둘 중 하나를 믿는 것이다. 사회에 안전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혹은 전체 공연이 사기라고 생각하거나.

(중랴)

왜 민주주의에 기계를 이용해서는 안 되는가

정치판에서도 기계에 의존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 부당하게 착귀당할 여지가 생긴다. 살인 로봇이 우리를 노예로 만든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입맛에 맞게 기계를 사용할 줄 아는 무자비한 인간이 그렇게 한다. 기술에 의존하는 세상에서는 기 기술에 대해 정통한 정치군이 곧 왕이다. 이는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를 괴롭히는 무서운 이야기인데,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해겠다. 기술이 부당하게 이용되는 확실한 증거로, 개인의 편경을 조장하고자 특정 성향의 유권자를 겨냥해서 기계가 메세지를 보내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반응을 유도해 내는 능력이 오용되면 민주주의 가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중략)

 힘은 강력하지만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느 기계는 주인인 인간으로부터 고통을 받지 않으므로 사실상 인간의 노예가 아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사물처럼 이용하면 타락하지만 기계 이용은 그렇지 않다. 기계는 그저 사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계들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중략)

 순수 민주주의란 무서운 것이다. 이는 군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사람을 쉽게 공격하게 해준다.  고대 아테네에서 인기가 떨어진 유명 인사는 시민들에 의해 추방되거나 암살 당했다. 1835녀에 미국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쓴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인들이 린치를 선호하는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 민주주의의 기원까지 추착했다. 토크빌은 이를 "다수의 횡포"라고 불렀다. 기회가 주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분노와 좌절감을 약자에게 쏟아 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오랜 역사를 이어 오는 동안 그런 거친 충동을 길들이는 데 체로 성공했다. 이제 사람들은 린치를 가하지 않는다. 벌을 주려고 다른 사람의 몸에 타르를 바르고 깃털을 붙이지 않는다. 다름 사람을 추방하지도 않는다. 단, 트위터에서는 예외다.

(중략)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견해에 더 많은 비중을 두지 않는 이이뉴느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에피스토크라시와 자주 혼동되는 테 크노크라시(technocracy)를 구분해야 한다. 둘은 다르다. 에피스토크라시는 최선책을 아는 사람들이 통치하는 체계이고, 테크노카라시는 기술 전문가들이 통치하는 체제다. 여기에서 기술 전문가란 기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중략)

대의민주주의와 중국식 실용주의적 독재 모두 테크노크라시가 출현할 여지가 충분하다. 두 체제 모두 특히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 특수 훈련을 받은 전무가에게 점점 더 많이 결정을 맡기고 있다. 전 세계 다양한 정치체제에서 중앙은행이 상당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러므로 테크노크라시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대안이 됮 못한다. 포퓰리즘과 마찬가지로, 이는 부수적인 지배 방식에 가깝다. 에피스토크라시가 테크노크라시와 다른 점은 기술적으로 정확한 결정보다는 '올바른' 결정에 우선 순위를 둔다는 것이다.

(중략)

비트겐슈탕니, 엘리자베스 테일러, 버트런드 러셀, 토머스 머튼(중략)콜럼부스, (중략),피터 크로풋킨, 당신과 당신의 부모님.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어울리는 삶이 있을까? 

 노직이 생각하기에, 유토피아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상적인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도 그러하리라 가정하는 실수를 범한다.

(중략)

1980년대 말, 서구의 여러 비판가들은 일본이 곧 강대국이 된다고 생각했다. 21세기는 일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유럽연합과 함께) '역사의 종말'에서 가장 기대할 만한 미래의 모범 사례로 일본을 들었다. 민주주의가 승리하면 세상은 안정적으로 번영하고, 효율적이되 다소 지루해질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거품은 (주식 시장의 붕괴와 함께) 꺼졌고, 미래는 다른 나라의 것이 되었다. 그 대신에 일본은 자만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 주는 우화가 되었다.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글담출판사)

서평 :

1. 새로운 시대에 발생 가능한 형태의 쿠데타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 지나치지 않고(제목과는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대해 언급한 책임.

2.  특히, 왜 자기 스스로 정의를 외치면서 상대방의 정의에 공감 못하는가. 심지어 그 중에서는 아예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들까지 있는데도 그런자 조차 스스로는 정의라 생각하는 심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음

3. 그 외에도, 정치를 기계에 맞기면 안되는 이유, 직접 민주주의 등등 근대 민주주의와 관련해 고민해 봐야하는 새로운 주제에 대해 상당히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음.

 

부정 선거론자들이 판을 치는 지금 상황에서 한번 쯤은 읽어 봄직한 책. 

2026년 8월 29일 토요일

[도서] 물리해양학 (크나우스, 존 A저)

 

서평

1. 해양학이라고 해서 뭔가 해양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고 봤던 책인데, 철저하게 해양 흐름을 계산한는 방법에 관한 물리학 책이다.

2. 지구 과학의 심화책이라고 보면 되며, 이 해류의 온도, 흐름 속도, 염도 , 해풍 속도 계산 등이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3. 이 분야에 대해 거의 첫음 접하기는 했지만, 지구 규모의 계산이다 보니, 코리올리 효과에 대한 내용이 거의 식 대부분에 들어 간다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으며

4. 세계 주요 해류에 대한 물리적 특성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인 내용이었음. 

 

5. 명백히 교양서라기 보다는, 전공 교과서에 가까운 내용이란 점이 좀 안타까운 책. 

2026년 8월 27일 목요일

[도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으로 배우는 확률통계 with 파이썬 (장철원 지음)

 

(기초 개념부터 확률 과정 기반 데이터 예측까지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으로 배우는 확률통계 with 파이썬 장철원 지음/ BJPUBLIC 출판사)

서평 :

1. 통계 전체적 내용에 대한 수학적 내용을 다룸

2. 이걸 파이썬 코드로 변경하는 내용까지도 광범위하게 다룸

3. 그러나 통계 내용이 거의 8이고 파이썬 내용이 2 정도로 언급이 되고 있으며, 파이썬 코드 내용의 깊이가 그렇게 깊다고  하기는 어려운 책이라는 단점도 있음

4. 그래서 책의 길이가 길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좀 있기는 하나, 통계 내용을 전체적으로 다시 복습하기에는 좋은 책인 것은 사실임.

2026년 8월 26일 수요일

[도서] 딥 스카이 원더스 (수 프레지 지음)

 

서평 :

1. 북반구 하늘 관측에 관해 어느 안내 서적보다도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며, 찾는 방법에서 시작해 밝기와 모양을 질좋은 컬러 사진으로  안내 해 주는 좋은 책임

2. 특히 관측 가능 한 시점을 월별 로 정리해서, 이번달에는 어느 별이 보기 좋은 별인지 가이드 해준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음.

3. 딥 스카이(심우주)와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이런 저런 사항들을 관측 외에도 이야기 해준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

 

4. 굳이 단점이라고 하면, 무게가 상당한 책이라 들고 다니며 보기는 힘들다는거? 

[도서] AI 시대 전쟁의 미래 (조지 M.도히티 저)

 


 우리는 표적판 위에 있다.

4세대 전쟁은 전쟁이 일종의 정치이며, 적 군대와 싸우는 것이 언제나 승리의 핵심이 아님을 일깨운다. 미 공군을 비롯한 주요국 공군을 움직이는 동력인 공군력 이론도 이 점을 인식한다. 전략적 공군력 이론은  공중 공격을 통해 적의 군사력 전체를 우회해서 적의 전쟁 수행 능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능을 직접 공격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이 핵심 기능들은 보통 표적 같은 동심원 모양의 열련의 "전략적 고리"로 개념화 된다.

 가장 바깥의 고리는 군사력이다. 중간 고리에는 생산 기반시설과  지휘,통신 네트워크 같은 중요한 시스템이 포함된다. 가장 안쪽이자 핵심적인 고리는 특정 모델에 따라 국가 지도부나 국민의 의지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삼위일체 원칙을 준수하고 국가 지도자나 민간인을 직접 공격하지 않으며, 핵심 시스템과 기반 시설을 공격하는 데서 멈춘다. 하지만 4세대 전쟁은 교전 주체에게 정보, 언론, 정치적 기만, 협박 등을 통해 가장 안쪽의 고리도 표적으로 삼을 것을 촉구한다. 로봇 무기 덕부네 점차 교전 주체들이 가장 안쪽 고리를 물리적 공격의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

 선진국의 많은 민간인과 정치 지도자는 전쟁을 멀리서 벌어지는 불쾌한 일로 여기는 데 익숙하다. 군에서 복무하는 친구나 가족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는 흔히 방관자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본다. 하지만 정치인과 대중이 점점 공격의 초점이 되고 있으며, 로봇 무기로 인해 우린는 수많은 적대적 행쥐자들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갈 것이다. 비국가 세력은 국가 군대를 우회해서 경제적 목표물을 공격하고 시민을 위협할 수 있으며, 국가 간 충골은 상호 내전과 비슷해질 수 있다. 일반 시민은 많은 분쟁에서 무게 중심이 될 것이다. 주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이 군사 문제에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안보의 시대는 끝날 것이다. 요컨대 미국과 동맹국들은 거대한 표적을 등에 붙이고 있으며, 그 표적에는 우리 모두가 포함된다. 설령 일반 시민을 뿐인 우리가 로봇 전쟁에 관심이 없더라도 로봇 전쟁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

 역사는 로봇 군사 혁명이 사회와 지정학에 어떤 장기적인 결과를 가져울지  우리가 자세하게 예측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근본 동학을 보면, 몇백 년 동안 이루어진 그 어떤 구사기술 혁명보다 기존 강대국들에 한층 본질적인 파괴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안보 세계의 안정은 군사적인 우위라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로 보호받는다. 그 성벽은 산업의 힘, 우월한 정보 접근성, 군사 전문성, 산업 시대 병참 지배력 같은 요인들 위해 세워져 있다. 로못공학과 AI는 그런 우위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파괴의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무기로 많은 적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폭품이 일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뒤집힐 수도 있다.

AI 시대, 전쟁의 미래 (조지 M.도허티 저/김영사 출판)

 

서평  

1. 전선에서 어떻게 드론이 운용되는가에서 시작해 AI의 전쟁 적용 사례 등등 상당히 폭넓은 범위에서 적용한 책

2. 특히 단순히 현재 드론이 이러이러 하게 적용된다는 것에 끝나지 않고, 앞으로 여러 가지 방면으로 사용될 것이며 그에 대한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 분석하기 시작했다는 건 훌륭한 책임

3. 단, 이 책도 명쾌하게 드론이나 인공지능으로 인해 발생할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비록 군견이라는 사례를 들었지만) 별로 명확한 답을 내주지는 못했음

4. 역시 핵과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는 거 외엔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임.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도서] 전쟁충동


 

 안보학의 임무는 이런 현대의 충돌들을 여구하는 것이다. 논의가 분분한 영토권 같은 문제가 그중 하나다. 1945년 이후에 만들어지고 규정된 이 학문의 목적은 전쟁의 우너인과 전쟁을 방지할 방법을 연구한느 것이다. 초기 중국이나 로마 같은 역사적 사례들이 '안보딜레마'(충돌을 피하면서 안보를 확보하는 방법)라고 부루는 것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잠ㄴ, 이 학문은 냉전과 쟁전 이후 세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왜 전쟁이 발발하거나 발발하지 않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핵신적인 설명은 여전히 안보이다. 그것이 충분한지 도는 너무 부족한지에 관한 것이다.

 (중략)

 개별 국가의 행동이 아니라 국제 체제의 이해를 통해 전쟁 또는 잰쟁의 부재를 설명한느 것을 강조하는 것은 미국 전략 이론가들 사이에서 '신현실주의'(개별 국가의 외교 정책을 다루는 '신고전 현실주의'와 혼동하면 안 된다)로 불리게 된다. 신현실주의를 창시한 문헌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교수 케네스 왈츠가 1979년 출간한 국제정치이론이라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1940년대의 양극 냉전을 지배했던 국가 안보 이론과 다르다고 하지만, 왈츠는 국제 체제를 국가의 집합체로 규정했다. 모두가 권력을 자국의 안보를 위해 사용하기를 원하는 나라들이다. 그의 결론은 불이나 힌슬리와 근보적으로 달라싿. 그는 충돌과 경쟁이 체제 자체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다. 왈츠는 이렇게 썻다. "무정부적 체제에서 국가는 스스로의 안보를 확립해야 하며, 안보에 위협이 되거나 위협이 된느것처럼 보이는 것은 많다."전쟁이 반복되는것은 국제 체제의 구조로 설명된다면서 "무정부적 세계에서 평화는 깨지기 쉽다"라고 왈츠는 주장했다.

 신현실주의는 두 개의 분명한 학파로 갈라져 이론적 설명이 더욱 복잡해졌다. '공격적 현실주의'와 '방어적 현실주의'다. 전자는 강경파 현실주이로, 국가는 타국과의 관계에서 절대로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고 언제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요할 경우 의도적으로 공격에 대응하는 군사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런 형태의 신현실주의 아래서 국가는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군력을 얻으려 노력해야 한다. 공화국 시기의 로마와 좀 비슷하다. 이런 의미에서의 권력 추구는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고 더욱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에서든 세력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냉전 시기 엄청난 무력을 갖춘 두 초강국 사이의 균형 같은 것이다. 반면에 방어적 현실주의는 영국 학파와 마찬가지로 안보는 방어에 더 적합한 구사적 형태를 갖춘 온건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더 잘 고나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가는 협력, 동맹, 협정, 심지어 군비 축소를 통해서도 안보딜레마를 해결 할 수 있다. 더 타협적이고 협력적인 구조가 가하는 압박은 전쟁의 가능성을 줄일 것이고, 사실 그것이 현대 국제관계의 특징이다. 이는 '구조적 조정자'라고 불리며, 이것이 무정부상태를 오나화하고 죽제 체제가 어째든 돌아가게 한다.

(중략)

 전쟁은 앞으로 100년 동안 분명히 변할 테지만, 누가 누구와 전쟁을 벌이고 그 동기가 무엇일지는 예측할 수 없다. 금세기까지 일어난 전쟁은 인과관계를 분명히 보여 준다. 전쟁은 사라지기로 예정돼 있다는 생각은 2000년 이후의 많은 충돌이나 다가오는 수십 년 동안에 예견되느 생태 위기, 자원 스트레스 종교적 갈등과 양립할 수 없다.  그 요인들이 전쟁을 유발 할 수 있고, 이에 대해서는 오랜 역사적 사례가 있다. 현재 또는 미래의 국제질서에서 전쟁 없는 세계가 곧 출현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전쟁의 원인은 수천 년 동안 줄곧 있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주요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잠재적 충돌에 대비하고 있다. 지상의 중무장한 적들을 지켜보는 사람이나 서방이 벌이는 대리전 또는 잦은 핵무기 상승작용 위협을 고나찰하는 사람은 그 다양한 형태의 전부행위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것이지만, 미래에도 전쟁은 존재한다.

전쟁 충동 -과학으로 추적하는 폭력의 역사(리처드 오버리 지음/출판사 : 북이십일 아르테)

 

서평 :

1. 인간의 전쟁 충동에 대해 생물/심리/인류/생태/자원/신념/군력/안보 라는 굉장히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검토를 한 좋은 책

2. 그런데 생물학적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인간은 그닥 전투에 적합한 생물이 아님. 당장, 전쟁터에 나간다 해서 몇 주 동안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계속 전투가 가능한 인간이 있을까?(반면에 인간이 잠수를 하면 놀랍게도 생리 구조가 해양 포유류와 유사하게 변한다) 돌고래만 해도 몇 주간 뇌를 좌우로 쉬어 가며 계속 해엄치는게 가능하지만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런게 불가능하다. 최초의 전쟁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시점으로 부터 생리적 영향을 끼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전쟁이 인간이라는 종에 생물학적으로 끼친 영향은 의외로 미비하다.

3.  그 외에도 자원이라는 부분도 좀 생각해 봐야 할게, 전쟁에 투입하고 그 이후 그 땅을 관리하는데 투입해야 한느 비용을 상회하는 사례는 굉장히 드물다. 심지어 유일하게 성공한 식민지 사업인 영국의 식민지 사업 조차, 결코 전면전 양상으로 간 적은 없다.(그곳이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이 우글거리는 장소라는 문제도 있지만)

4. 당장 전쟁, 적어도 현/근대적인 형태의 전쟁은 여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수단이다. 돈은 고사하고 식량조차 없다면 적어도 전쟁은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5. 그런데 책 내용 중, 적어도 하나는 전적으로 동의가 가는 내용이 있는데. 권력욕 때문에 전쟁을 한다는 내용. 이 욕구가 얼마나 사람을 멍청이로 만드는가를 우리는 바로 몇년 전에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전쟁이 발생하면, 권력이고 뭐고 모든게 다 부숴지고 자기 자신들이 그 상황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그 수단을 자꾸만 만지작 거린다.

6. 더불어 하나 빠진게, 전쟁에 대한 아주 긍적적인 낙관론. 이해가 안되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자들은 언제나 '나는 예외'라고 생각한다. 마치 도박장에 가서 나만은 그 많은 파산했던 도박가들과 다른 예외적인 행운을 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그거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듯 행동한다.

 

이런 점들이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좋은 책이라는데는 이의가 없음. 

2026년 8월 17일 월요일

[도서] 역사로 배우는 공학수학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과 '1+2=3'이 전달하는 내용은 동맇다고 볼 수 있지만, 그 간결성과 외연성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있다. 등호는 Recorde(1510~ 1558, UK; 1557)에 의해서 각각 도입되었으며, 간단한 1차 방정식에 대한 표현 y=ax+b 가 17세기에 들어와서야 보편화되기 싲가했다는 사실은 장구한 서양 수학의 역사를 생각하면 잘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이 1차 방정식을 직선과 관련지어 생각한것은 제 1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Descartes의  직각좌표계가 도입된 1637년 이후에나 일반화 된 사고였다.

 한편, 대수학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 중의 하나는 n차 방정식의 근에 관한 문제였다. Gauss(1799)는  그의 박사학위놈문에서 '만약 복소수를 허영한다면' 실수계수를 가지는 n차 방정식은 항상 n개의 근을 가진다는 것을 증명하였으며, 이 결과는 대수학의 기본정리(fundamental theorem of algebra)로 불린다.

이 정리를 오늘날은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발표 당시만 해도 상당한 오해 및 분란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Hamilton(1843)에 의해 복소수가 두실수의 순서쌍이라는 개념이 밝혀지기 전까지, 복소수의 특히 허수의 수용을 놓고 18세기와 19세기의 수학계는 그야말로 난맥상을 보인다. 대가 중의 대가라고 하는 Euler(1770)까지도 그의 대수학 교과서에서 믿기 어려운 착오, 즉 sqrt(a) sqrt(b) = sqrt(ab) 이므로, sqrt(-1) sqrt(-4) = sqrt(4) = 2 라는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Gauss의 입장에서는 '복소수를 허용한다면'하는 기술은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르는 것이었으며, 이런 관점에서 보면 Euler 공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식이 수학사 2000년을 담고 있다고 술회한 Euler(1755)의 술회를 곰씹어 볼 만하다.

e^(i pi) = -1

 

18세기 수학자들의 입장에서분만 아니라 우리 학생들에게도 식 (1)은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식이므로, 수업 시간에 항상 이 식과 고나련하여 어느 정도는 시간을 보내곤 한다.

  첫째, 이 식은 등호를 가진 방정식이란 점에서 이미 상당히 오랜 기간의 수학 역사를 가지지 않은 문명에서는 얻어질 수 없는 식이다.

 둘째,  이 식은 음수를 포함하고 있어, 실수의 개념이 최소한 음수까지는 확장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믿기 힘들지만 19세기 중엽까지도 음수를 실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수학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기를 바란다.

 셋째, 이 식은 가장 대표적인 무리수(irrational number)인 pi와 e를 포하하고 있다. pi는 원주와 직경의 비인데, pi란느 표기 또한 Euler(1755)에 기인하는 것이며, 주어진 원과 같은 면적을 가지는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알아야 한느 수록, 인류가 가장 무리가 ㅇ벗어 보이는 원과 관련하여 기하학적으로 만단 무리수다.(중략)

   넷째, 이 식은 허수 i = sqrt(-1)를 포함하고 있는데, i라는 표기 역시 Euler(1777)에 기인하였으며, 제곱의 역연산인 제곱근을 구함에 있어 음수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면, 그 결과는 실수의 한계를 벗어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야 이와 가은 표현을 허용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이 식은 지수함수의 자변수(argument)로서 허수를 취하고 있다.  2^2, 3^3 등은 제곱을 거듭해줌으로써 계산 가능하지만, 일단 2^(sqrt(2))만 되어도 실수의 승수가 무리수일 경우에는 어떻게 계산을 수행할 것인지 잠깐 생각해야 할 것이다.(중략)

 

 이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수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된 행렬과 행력식에 대해, Cayley와 Sylvester는 행렬을 선형변환(linear transformation)으로 파악하고, 이 선형 변환과 관련하여 좌표변환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양, 즉 불변량( invariant)에 관한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그들에 의해 얻어진 결과는 20세기에 들어서 현대물리, 수치계산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왔다.

 

서평 : 책 초기에는 책 제목대로 역사와 그 당시 마주친 문제로 인해서 어떤 수학이 발명 되어 왔다는 내용을 잘 표현하는데, 역시 방대한 양 탓인지 책의 후반으로 가면서는  공식 전달하기에 좀 급급한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수학 교과서에서는 결코 말해 주지 않는 그 시대의 고민에 대해 말해 준다는 점은 엄청나게 고마운 책

2026년 8월 16일 일요일

[도서] 고양이 문화사

 


서평 :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해 근대까지 고양이와 인간의 역사에 대해 언급한건 좋은데,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건 근대 고양이의 생태학적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다소 책의 양에 비해 아쉬운 점.

2026년 8월 14일 금요일

[도서] 인간 없는 전쟁

 


AI 군비경쟁은 멈출 수 없고, 더 강력한 AI무기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AI가 인간을 살상하는 사례도 빈번해질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쟁을 시작하고 멈추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가치관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기를 멈출 때 전쟁이 벌어진다. 아무리 강력한 무기와 기술이 있다 한들, 대화와 타협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꺼낼 일이 없을 것이다.

 AI시대에 인간다음을 지킨다는 것은 AI와 맞서 싸우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이고, AI로 대체해서는 안 된느 영역은 무엇인지, 끊임 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대화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다. 기업이나 국가, 사회 차우너의 문제만이 아니다. 개인 역시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고,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결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평소 당연하게 여기면 지나치던 일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AI가 추천하는 경로만 따라가는 대신, 스스로 고민해서 선택하는 습관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음악이나 영상만 보지 말고, 자신의 관심 분야를 직접 검색해 볼 수도 있다. 뉴스나 책도 마찬가지다. 휴율성을 이유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AI가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캐물을 권리도 있으며,  그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방식인지 스스로 되물어 볼 수도 있다.

 기업이 새로운 AI 서비스를 출시한다면, 누구의 이익을 위한 서비스인지 다져 보자. 정부가 AI 시스템을 도입하면, 투명성과 책임을 요구하자. 군대가 AI무기를 배치하면, 어떤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지 물어보자. 언론이 AI 무기 사용을 보도하면, 그 뒤에 숨겨진 선택을 추궁하자.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변화를 만든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쳤다는 죄로 영원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인류는 불을 길들였다. 언제 피우고 꺼야 하는지 배웠고, 그 불로 문명을 일궀다. AI라는 새로운 불 앞에서, 이번에도 우리는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  이 불이 우리를 태울지, 아니면 밝은 미래를 비추는 햇불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래는 기술이 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한다. 그릭 그 선택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책에 대한 전체적 소감:

1. 최근에 각광 받는 내용들(AI와 드론)에 대한 내요을 기입한건 좋았다고 생각함

2. 그런데 그렇게 깊이가 있는 내용이라고 보기는 좀 어려운게, 그런 내용들에 대한 언급과 피상적 내용은 많지만 이걸 깊이 있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느낌임. 

3. 그래도 드론 전쟁 양상에 대해서 서술된 몇 안되는 책이라는데(특히나 국내 저자에 의한)점에서는 크게 평가를 해주고 싶음. 

2024년 5월 13일 월요일

[도서] 잘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적어도 한국에서 고래의 상징은 '귀신고래'였다. 일본 제국주의의 작살에 스러진 비운의 고래.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고래. 귀신고래에는 매력적인 식민지 비운의 서사가 아우라를 더해주었다. 일본은 한 때 '고래의 바다'였다는 동해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고래를 잡았다. 1933년 이후 절멸한 듯 귀신고래는 잡히지 않았고 1958년 일곱 마리가 잡혀 돌아온 듯했다가 1964년 다섯 마리가 포획되고 1977년 두마리가 목격된 것을 끝으로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포경시대에 대한 향수에서든, 고래 보호에 대한 신념에서든, 귀신고래 포경 재개 찬반을 가리지 않고 한국 고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중략)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 중 하나가 바로 돌고래쇼죠. 그런데 쇼에 나오는 돌고래 중 상당수가 불법포획돼 동물원에 팔려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중략) 해경 조사 결과 이 중상당수가 제주 앞바다에서 어민들에게 불법포획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중략)

 우리나라는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상업포경 모라토리엄'이 시행된 이후 대형 고래는 물론 소형 돌고래의 포획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물에 우연히 걸려든 것이라도 법에 따라 즉시 방류하거나 해양경찰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 업체는 어민들에게 그물에 돌고래가 걸리면 연락을 달라고 했고, 현장에 달려가 한 마리당 700~1000만원을 주고 사 왔다. 업체에 들어온 돌고래는 그때부터 공연용 돌고래로 조련받기 시작했다. 하루에 네댓 차례 있는 돌고래쇼에 나가거나 일부는 서울대공원으로 넘겨졌다. (중략)

경찰이 수사보곳에 최종적으로 기록한 불법취득 돌고래는 모두 스물여섯 마리였다. 모두 우연히 그물에 걸린 돌고래를 의도적으로 '포획' 한 것이었다. 퍼시픽랜드는 이 가운데 여섯 마리를 서울대고원에 넘겼다. (중략)

 서울대공원 개원을 알리는 테이프를 절단하고 전두환 대통령과 각급  장관들은 시찰에 들어갔다.(중략)  대통령 일행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돌고래쇼장이었다. 그때까지 한국 동물원에는 돌고래가 없다. 돌고래쇼도 없었다.(중략) 돌고래들은 연달아 실수했고, 그럴 때마다 대통령 옆에 앉은 오창연은 마음을 졸였다. (중략)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듣고 오창영은 안도한다.

 "대양이 좁다고 누비던 돌고래들이 이 산골에서 저만한 재주를 부릴 수 있다니..."

 대통령은 흡족했던 것이다. (중략)

 전도수와 김외운은 일본인 조련사에게 돌고래 조련을 배웠다.(중략)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서울대공원과 그 대표상품인 돌고래쇼를 가로지르는 식민주의에 관한 역사성이다. 서울대공원은 일본에서 벗어나 탈아 하고자 했지만, 돌고래쇼에 이르러 '회일' 했다.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중 (남종영 지음)


 가끔 상상하는 사항이기는 한데, 어쩌면 인류 역사 초기에 (특히 농경이라는 것이 시작되는 시기) 인간이 같은 인간을 가축화 하는 시도가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호러 영화 같은 내용의 가상의 역사를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근거는 없기 때문에

2023년 10월 2일 월요일

[리눅스] 스팀 'VM머신에서 작동할 수 없습니다' 문제 해결 방법(가장 쉬운)

 스팀을 리모트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 PROXMOX머신에 위도우를 설치해서 스팀을 설치 모든 세팅(pci passthrough 등등)을 맞추고 마침내 게임을 설치...

 그런데 난데없이 '가상머신에서 작동할수 없습니다'라는 소비자 권리 침해하는 이야기가 나오며 작동을 멈춘다. 한참을 이걸 해결하길 위환 방법을 찾았으나 결국은 포기... 했었으나 방법을 찾아 내었다.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한데, VM에 리눅스 배포판(민트든 우분투든)을 설치하고 정상적으로 그래픽카드 드라이버를 설치하고 스팀을 설치한 뒤에 여기에서 게임을 실행하면 VM에서도 정상적으로 게임이 실행 될 뿐만 아니라 스팀덱에서 정상적으로 리모트 플레이가 가능하다.

2022년 9월 6일 화요일

[시사] 인공 지능 시대의 예술에 대한 가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래 링크의 기사 내지는 최소한도 그림에 대한 내용을 보았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1위‥"이것도 예술인가?"

 출처 : https://imnews.imbc.com/news/2022/world/article/6404569_35680.html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인간의 고유 영역인 예술까지 기계가 침범했고 인간의 시대는 끝인가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의견을 내었는데(그들 대다수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부정적인) 컴퓨터 기술 수준이 이정도까지 올라간 것은 굉장한 일이나 그러나 이 시점에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본다. 다음의 질문에 진지하고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자.


1. 우리는 말을 타면 70 km/h를 달릴 수 있다. 자전거를 타면 나 같이 발걸음이 느린 사람조차 순간적으로라도 30 km/h까지 속도를 높힐 수 있고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타면 80 km/h는 우습게 올릴 수 있고 KTX를 타면 시속 200 km/h까지 속도를 내는게 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육상 올림픽을 올림픽의 꽃이라 여기며 세계 기록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기록조차 이것을 시속으로 전환하면 44 km/h가 넘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이 속도는 10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지속 가능한 속도이고 1시간동안 이 속도를 유지 가능한 초인은 세상에 없다. 마라톤은 어떨까? 시속으로 전환하면 22 km/h정도가 세계 기록이다. 기계가 80 km/h 까지 우습게 도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인간의 이런 기록은 초라하기까지 하지만, 이걸 감히 초라하다고 할 얼간이는 없다.
 왜 우리는 우주적 객관성을 가지고 보면 초라할 이 기록에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아니 당초 기계가 모든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이 시대에 어째서 아직도 올림픽이라는걸 하는걸까?

2. 사진이란 것이 발명 되었을 때, 예술은 이제 끝났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세상 그 어떤 화가 보다도 더 사실직이고 빠르며 무었보다도 인간 화가 보다도 더 저렴하게 화상을 기록 가능한 발명품 앞에서 그 때 까지의 회화라는 기법은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모든 현대적 국가의 학교 수업에는 꼭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회화 실습과 수업이 들어 간다. 어째서 일까? 스마트폰 카메라로 버튼 한번 누르면 끝나는 일을 종이와 연필로 재현 하는 일을 수업에 넣어 두는 것이다.

3. 위의 2번 사항에서 시간이 지나 현대에 와서 사진전에는 꼭 사진의 RAW파일을 제출하게 한다. RAW파일은 카메라가 렌즈를 통해 받아들인 상을 센서를 통해 기록한 가장 원본에 가까운 기록 파일이다. 컴퓨터 합성이 일상화 된 이 시대에 현실을 가장 그대로 기록했다는 증거로써 심사 입증에 제출하게 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할까?

4. 우리 '인류'는 어째서 그림이라는 예술 활동을 선사 시대부터 해왔던 것일까? 이 행위 자체는 먹고 사는데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다. 아니, 먹이를 잡거나 채집할 인력과 시간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얼추 보기에는 그 먹고 사는 행위 자체를 방해 하는 행동에 가깝다. 그 뿐일까? 고고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벽화의 염료는 독을 가지고 있어서 벽화를 빨대로 그렸던 사람들은(염료를 빨대로 빨았다가 뿜는 일종의 스프레이로 사용했던 것이다) 필시 환각을 보면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5. 체스와 바둑 모두 슈퍼컴퓨터가 인간 기사를 이긴지 오래이기는 하나, 올해도 여전히 체스와 바둑 대회는 열렸다. 물론, 인공지능의 공격적 수에 영향을 받아 심히 달라진 전통적이지 않은 수가 많이 생겼다고 풍문에 들리고 있지만, 여전히 기사가 대국을 둘 때에는 아무런 도구 없이 오직 자신의 두뇌와 손만이 허용된다. 몇년 전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치팅 행위를 하다 발각되어 기사 자격 및 상이 몰수 되는 상황이 발생했던 일도 있었다. 우리는 컴퓨터가 바둑이나 체스를 더 잘두는 시대에도 어째서 사람의 생각하는 힘만으로 겨루는 대회를 고수하는 것일까?


위의 사항들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하는 스포츠, 예술 활동은 모두 생존에 필수 적인 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 이전부터 이러한 활동들을 해왔다. 어째서일까? 범 우주적, 절대적인 객관적인 시점이 있다면 이 행동들 모두 잉여 행위에 불과한 행동이란 뜻이지 필수적인 행동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행동을 경의롭다 생각하고 그때 그때 기술의 발전에 따라 경향이 바뀌는 일은 있어도 선사 시대 우리가 그림을 그리던 그날 부터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러한 예술과 스포츠는 그 것을 한다는 해위 자체가 바로 인간의 한계를 증명하는 행동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것의 도움도 없이 순수한 인간의 힘만으로 인간의 한계를 증명하는 이 행동이 바로 이 잉여 행위를 수만년의 시간을 넘어 유지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래서 컴퓨터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이 행동 자체가 맥이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발전과 변화가 없을 때만 이 행동의 종료가 올 것이다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기계에 의해서 종료된 직업과 행동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행동을 통해 얻는 것이 행위의 목표일 경우입니다. 소위 말하는 직업의 경우 그것을 행하는 행동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는 산출물이 목표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만약 기계가 그 행동을 대체할 경우 거의 즉각적으로 그 직업이 소멸되어 가는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행동 자체가 목표인 게임, 스포츠, 예술, 글쓰기의 경우 기술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 경향이 바뀌는 일은 있어도 그 일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 경향에서 볼 때, 오직 결과만이 모든 것이다라고 보는 성과 지상주의자야 말로 기계로 대체될 여지가 많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2022년 7월 29일 금요일

[도서] '중세의 죽음'을 읽고서

 헤라클레스, 삼손, 다윗, 아더왕의 공통점은 무었일까? 

사실 이 셋은 단순히 기운이 센 장사라는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모두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 신의 선택을 받은 전사 혹은 지도자라는 점과 '장사'라는 속성이 있다.

 헤라클레스는 탄생 자체가 반인 반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고, 삼손은 신의 선택을 받은 제사장, 다윗 역시 신에게 선택받아(=엘리야 선지자) 유대인의 왕이 되었으며 아더의 경우 탄생부터 멀린이라는 마법사로 부터 준비되어 엑스칼리버라는 신검을(처음에는 망치였다는 이야기가 있음) 바위로 부터 뽑아(처음에는 모루라는 이야기도 있음) 자신이 신으로 부터 선택 받은 전사임을 증명하는 식으로 신의 전사이며 자신의 무리의 우두머리(=지도자)라는 것을 증명한다. 

 헤라클레스는 지금도 장사의 대명사나 마찬가지고, 삼손도 유대인 중 가장 기운센 장사라는 아이콘이며 다윗은 블라셋의 거인 '골리앗'을 하필이면 돌을 머리에 박아서 쓰러트려 자신이 힘을 증명하고 아더왕의 경우 그 속성이 부하로 분리되기는 했으나 그의 부하인 가웨인은 힘이 장사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아더왕의 경우 남들이 들어 올리지 못하는 무거운 신검을 들어 오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힘을 증명한 것이다)


2) 4명다 신의 기준은 커녕 세속적 기준의 도덕정 결함을 가진 행동을 한다

 헤라클레스는 아주 수시로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르는게 일상이고(그리스 영웅 전체가 그렇게 도덕적인 행동과는 거리가 있다) 삼손은 당시 유대인들 기준에서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외국인 여자와 혼인을 하기를 원했다. 다윗은 정권 초라면 모를까 자신이 왕에 올라가서는 비록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여자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여자와 아이를 가졌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람 상대의 남편을 자살 공격대 선봉으로 내세우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는 행동을 했다. 아더왕의 경우 그 탄생(앞서 이야기한 다윗 왕 다음의 왕 솔로몬의 경우처럼)부터 영 도덕적이지 못한 방법이었고(유럽 신화나 전설에서 신이 남편의 모습으로 변신한체 남녀 관계를 가진다는게 드문 내용이 아니지만) 그의 사생아인 모드레드의 반란(그리고 그 사생아는 자신의 누이와의 관계로 태어난 아이다) 다시 왕비인 귀네비아는 왕의 기사 중 하나인 란셀롯과 부도덕한 관계였다.


3) 4명다 이 부도덕한 행동이 본인과 왕국의 파멸을 가져옴

 헤라클레스의 경우 어느 국가에 소속되어 본적이 없으니 좀 다르겠지만 역시 사실상 길가에서 마주친 사람(라기 보다는 하급 신)을 죽이고 다시 자신의 아내 외의 사람들 탐하다 이들이 복합적으로 만든 함정에 빠져 죽게 되었다. 삼손의 경우도 외국 여자를 탐하다 자신의 약점인 '긴 머리카락'을 잘리고 노예로 고생고생하다 이들에게 보복을 하고 죽게 되고 다윗의 경우 몇 세대가 걸리기는 하지만, 그런 부도덕을 통해 만들어낸 왕국이 결국 철권 독재 정치를 거듭하다 왕국의 분열을 낳게 되고(사실 솔로몬 대에도 왕국의 분열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종국에는 거의 근래까지 왕국은 멸망하게 된다.(물론 둘 사이에 시간 차가 있어 이걸 연결하는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아더왕의 경우도 왕국내의 온갖 부도덕한 사항들이 만들어낸 갈등이 부디치며  종국에는 왕국이 분열 파멸의 길을 걷게 되며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의 목슴 조차 잃게 되는 결말에 이르르게 된다.


이상과 같이 이들은 모두 문화권이 가까운듯 하지만, 반대로 서로 상이한 문화권(그리스/유대/영국)의 영웅들이나 서로간에 상당히 재미있는 공통점들이 있는 영웅들이다. 뭐랄까,신의 선택을 받은 슈퍼히어로 조차 현실이라는 문제에 던져 두면 결국 한계에 부딪혀 언젠가는 꺽인다는 점을 표현하려 했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들 모두 시작할 때는 신의 선택을 받은 선의 화신들이 현실 문제에서 타락을 거듭해 죽음이라는 몰락을 겪는다는 점은 상당히 재미있는 문제이다. 동시에 이들 영웅담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들이 현실의 문제 앞에서 보통 사람과 똑같이 고민하고 갈등하다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점이 이 이야기들의 재미의 핵심이다. 초인이 남녀상열지사에 극도로 고민하는 평범한 고민을 가지고 그 고민 끝에 내놓은 행동이 평범한 인간만 못한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가 왕국의 몰락이라는 파멸적 결론이라는건 이 이야기를 아주 극적으로 만들어 주며 동시에 '태어날 때는 영웅, 죽을 때는 괴물'이라는 클레셰를 아주 잘 따른 상황이라 본다.


4) 이 이야기의 종료 후, 이 인물들은 대중 희망의 아이콘이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들의 가장 극적인 부분인데, 이 인물들은 사후 후대인들에게 이들의 부도덕한 행동과 파멸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대중 희망의 아이콘(상징)이 되어 준다는 점이다. 특히 어려운 시기가 와서 그 문화권이 어려워 질 수록 재미있게도 대중은 이 영웅들을 다시 희망으로 재 소환해서 그에 상응하는 인물이 다시 나타나길 기대한다. 어쩌면 이러한 신화나 전설은 그런식으로 나타난 인물이 자기 권력에 도취되어 파멸을 겪어 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일 지도 모른다.


만약 이 이야기들에서 힘(=폭력)이라는 요소를 빼고 도덕적 행동을 하는 캐릭터를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그게 바로 '예수'일 것이다. 항상 옳바른 선택만 하고 도덕적 타락을 겪지도 않는다. 당연히 그의 죽음의 원인은 자기 '제자'의 배신에 의한 사건이며 그 탓에 어떤 의미에선 '도덕적 갈등'으로 인한 파멸 또한 없는'영웅담'으로써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대신 '예수'의 경우 부활을 통해 위의 영웅들이 달성 못한 '죽음'의 극복이라는 속성을 가지게 되며 이야기의 진정한 종결과 재미는 이 부활 부분일 것이다.


 추가 : 조금 시점을 달리 해서 보자면,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장사치의 좌판을 뒤엎어 버린 부분은 '장사'라는 속성을 부여해 준 부분일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신화의 영웅들과는 달리 거대한 바위나 무거운 검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을 과감하게 들어 올려 깨 버렸다는 점이 어쩌면 그의 가장 큰 속성을 부여해 준 것일 것이다.

2022년 6월 25일 토요일

[도서] 모방자의 의미

 사교적인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 더 즐거울 뿐만 아니라 필경 그들 역시 더 똑똑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개념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재와 모방자의 두 종족이 살고 있는 행성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천재는 매우 뛰어나며 열 명 중 한명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 진정으로 놀라운 것(예를 들면 낚시대)을 방명한다. 모방자들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낚시질을 배우는 사람은 천 명 중 한 명뿐이다. 이는 천재가 모방자보다 백배 더 똑똑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천재들에게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하다. 평균적으로 낚시대를 발명한 천재는 주위에 낚시를 가르칠 수 있는 친구가 한 명밖에 없을 것이다. 모방자에게는 평균 열 명의 친구가 있어 열배 더 사교적이다.


'휴먼카인드' 에서

2022년 6월 12일 일요일

[LINUX/ZFS] zfs pool ID(혹은 UUID)로 생성하기

 참조 페이지 :

https://www.reddit.com/r/zfs/comments/o5qm6e/proper_way_to_create_a_zfs_pool_byid_format_type/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addong1224&logNo=120182042931

https://jangpd007.tistory.com/218?utm_source=pocket_mylist


1.설치

    apt install zfs-fuse
 

2.풀(pool) 생성

여기서 부터가 중요하다. 보통 풀을 생성할 때에는 장치명(/dev/sda 혹은 sdb) 같은걸로 지정한다. 문제는 이렇게 했다 나중에 하드디스크를 추가할 경우 일시적으로 나마 마운트가 안되는 불상사가 발생 가능하다.
 그래서 하는게 

    1) ls -l /dev/disk/by-id
           혹은
        ls -l /dev/disk/by-uuid
 
로 원하는 디스크를 조회한다.
 
아직 디스크에 파티션을 생성 안했다면 뜨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2) sudo mkfs.xfs /dev/sdx 
 
명령어로 임시로 파티션을 생성하면 id가 조회가 될 것이다.
 
    3) sudo  zpool create -f (생성 pool 명) "/dev/disk/by-id/xxxxxxxxxxxxxxxx"
 
위와 같이 생성하면 원하는 디스크를 id로 생성하는게 가능하다. 

3. 마운트

3)번 명령어에 -m 으로 한번에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나 
 
sudo zfs set mountpoint=(마운트 포인트) (zfs pool 명)

으로 수동 지정해 주면 드디어 마운트가 된다.

이제 써 주기만 하면 끝.

2022년 2월 2일 수요일

[LINUX] fish shell로 전환 시 anaconda path 문제 해소

 참조 문서 : https://stackoverflow.com/questions/34280113/add-conda-to-path-in-fish


통상 리눅스를 맨 처음 설치하고서 쓰게 되는 것은 전통적인 bash shell인데 굉장히 안전적이면서도 강력한 기능의 shell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쓰다보면 편의성 부분에서 아쉬울 때가 많은게 사실이다.(그래도 자동 완성 기능만 해도 엄청난 진보지만) 그래서 잠시 만이라도 다른 종류의 shell로 전환을 하려면


chsh


이라고 한 줄 명령만 내려주면 (cat /etc/shells 라고 설치된 쉘 종류의 확인도 가능하다)금세 변경이 가능하나 파이썬 유저의 경우 생각치 못한 한가지 시련이 내려지는데 그건 바로...


anaconda명령어가 갑자기 안먹힌다.(정확하게는 conda path가 쉘이 바뀌며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는 간단하게 한줄 명령어만 내려주면 해결된다.


/(당신의 아나콘다 설치 경로 대게는 ~ 다)/bin/conda init fish


이 명령어 한 줄이면 fish에 필요한 설정을 자동으로 추가해 준다.

2021년 8월 16일 월요일

리눅스(민트)에서 페이스북 한글 입력 문제 해소

 리눅스 데스크탑 사용자가 극도로 적은 한국에서는 별 의미 없는 이야기일 수 있으나 페이스북 한글을 적으려 할 때 이상하게도 한글이 제대로 입력 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입력을 하는데 전에 입력한 글자가 사라져 있다든가 하는) 발생하기 시작한지 벌써 몇년 째인데도 사실상 방치 내지는 포기 수준의 상황이라서 그런데 사실 쉬운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그냥 불여우를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리눅스 데스크탑에서도 페이스북에 한글 입력이 정상적으로 입력이 됩니다.

2021년 7월 16일 금요일

[감상] 소녀환상과 소녀병 사이 - 바이올렛 에버가든 극장판 감상

 단도 직입적으로 이야기 하겠다. 이 작품의 작화는 내 일생에 보았던 에니메이션 작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작화라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화의 작품이다. 그것이 이 작품을 감상할 가장 커다란 이유이며 특히나 마치 촉감이 느껴질 것 같은, 바람에 날리는 사물들과 머리카락, 빛의 변화를 반영한 색감등(특히 노을이 져가면서 변해가는 색감, 노을의 사진을 찍어본 사람이라면 알것이다. 시간이 변해가며 변해가는 색감이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가히 3D 그래픽의 지나치게 현실적인 느낌을 사용할 수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이(이왕이면 동아시아 전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만) 가야하는(그렇다고 예전처럼 무조건 손으로만 할수는 없는) 방향을 제시하는 아주 좋은 사례로 남을 작품일 것이다.

 스토리 면에서도 아주 만족스러웠던게 올해 파격적인 스토리를 만든답시고 거대 기업들이 만들었던 비싼 쓰레기들(그리고 속아서 그것을 소비해야 했던)과 비교한다면 통상적 산파극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이 스토리 구성은 아주 안정적이면서도 몰입이 가능한 스토리였다. 자신의 딸에게 매년 보내는 미래의 편지를 남긴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인연으로 해서 이미 몇십년 전의 지나간 세상의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그런 형태로 그 스토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작은 다큐 형태를 이루었고 그 덕분에 수 십년 후 내가 보고 있는 캐릭터들이 어떤 형태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는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상당히 극적으로는 재미있는 장치인 것이, 그렇게 해서 그들이 남겼던 것이 무사히 남아 후세에 전달 되었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고 이 지역에 평화가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작동하고 있는 장치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개를 쭉 이어가는 시청자는 다른 매체의 작품(예를 들면 TV판 애니메이션)과의 연개와 동시에 그 이야기의 후일담을 자연스레 접하는 장치로서도 작동하게 되었고 이것은 나오는 이야기들이 뜬금 없는  스토리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요 근래 이야기의 스케일이 큰 작품들 혹은 파격적인 스토리를 추구하는 작품들이 유행하면서 이런 전개의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거나 혹은 뜬금없는 스토리 전개로 사람을 아주 피곤하게 만드는 내용이 2019년 부터 쏟아 나오기 시작하는데, 어벤져서의 영향으로 사람들 모두 스케일 크고 등장인물 많고 그러나 그 아랫면에는 얄팍하고 안정적인 클레셰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희 최악의 한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한해였던 해였으니 이 지극히 공식에 충실하지만 그러나 완성된 구조로 동시에 제일 중요한 차이는 구성의 합리성이 있었던 작품이니 더더욱 반가웠던 작품이었다.

2020년 7월 14일 화요일

[LINUX] R 설치(Jupyter Notebook LAB 기반)

R은 뉴질랜드에서 만든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가진 언어로써 통계학과 데이터 처리에 특화된 역시 특이한 언어이며 근래에 와서는 역시나 자기 특기에 점점 더 특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는 언어이다. 
 오픈 소스에 무료로 배포되고 있으니 써보지 않을 이유가 없고 아나콘다를 통해 쉽게 설치할수 있으니 꼭 써보자.

참조 URL : 
https://anaconda.org/conda-forge/r-base
https://projectosyo.wixsite.com/datadoubleconfirm/single-post/2019/09/15/Installing-R-kernel-in-Jupyter

1. 일단 conda를 설치

    conda install -c conda-forge r-base

일단 여기까지만 해도 설치는 되고 커널에 R이 뜨기는 하는데 곧 죽는다...

2. 여기서 다시한번 해줘야 할 일이 있다. 

(base)에서
    which 명령어로 R의 위치부터 확인해 보자

    which R
            /home/(유저명)/(miniconda or anaconda)/bin/R

이라고 뜨면 정상적으로 뜬 것이고

    R

이라고 명령을 내려 R콘솔로 들어가서
    
    install.packages('IRkernel')
    IRkernel::installspec()

이렇게 하고 쥬피터 노트북의 커널을 R로 바꾸어주면 이번에는 커널이 죽지 않는다.